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㊵ 활 만드는 소년 이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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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이 쓰던 목궁의 맥을 잇고 싶어요”
혼자 연구하고 공부하며 활을 만든 소년이 있다고 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길을 혼자서 가는 청소년. 휘황찬란한 영상이 밤낮으로 세상을 뒤덮고, 각종의 다양한 음악들이 가득하여 오히려 ‘비어있음’을 찾기 어려운 이 시대에, ‘16세 소년이 활을 만들다니’하는 놀라운 심정으로 소년을 찾았다.
사전 취재차 들러본 인터넷 카페에서 본 활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직접 눈으로 보니 활이 보여주는 곡선과 맵씨가 눈을 황홀하게 했다.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10여개가 넘는 활들 모두 이소운군의 손을 거쳐 탄생한 것이란다.
▲이소운 군이 만든 아름다운 활들
감탄하는 우리들에게 차분차분 설명을 하더니 “쏘는 것 보여드릴까요?”란다. 실내에서 어떻게?라고 생각하는데, 이동식으로 만든 과녁을 한쪽 벽면에 세워놓고, 맞은 편 벽으로 가서 시위를 당긴다.
화살을 당기는가 싶더니 얼른 시위를 놓는다. 활시위를 당기고 과녁에 맞추기 위해 몇 초간 정지했다가 쏘는 양궁과는 사뭇 다르다.
“국궁에서는 활을 잡아당기다 바로 날려야해요. 정지 동작 없이. 당기면서 에너지를 저장하는데, 정지해서 버티면 에너지를 저장하지 못해서 탄성이 줄어들고 활의 수명이 줄어들어요. 그래서 당기면서 바로 쏘아야 해요.”
시위를 당기는가 싶으면 바로 쏘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활 만들어 행복한 소년 “목궁 이어갈 사람 저였으면”
국궁정 많은 파주, 영집궁시박물관도 있어
파주에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비해 국궁장이 많은 편이다. 현재, 파주시 관내에 총12개국궁정(=射亭)중 10개 사정(금호정,경무정,임월정,근무정,선무정,공릉정,광무정,교하정,화석정,감악정)이 정상운영되고 있으며, 2개 사정(월곡정,율곡정)은 운영이 중단된 상태이고 궁도인은 약300여명이다.
또 탄현면에 영집궁시박물관이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활 화살 전문 박물관이다. 여기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국궁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고, 지금은 꿈다락 토요문화학교가 열려 국궁을 보급하고 있다(영집궁시박물관-파주시 탄현면 국원말길 188. 전화 031-944-8800).
이같이 국궁 인프라가 남다른 파주시에 활 만드는 소년이 살고 있다니, 우연이 아닌 듯 싶다는 생각마저 일었다.
▲자신이 만든 활 앞에서
활쏘기는 당대의 스포츠
우리가 올림픽 등에서 보는 활쏘기 경주는 모두 양궁이다. 양궁은 현대식 경기용 활로 개발된 서양활이다. 양궁은 생긴 것 자체가 국궁과 다르고, 온전히 경기용이다 보니 무게추와 평행봉도 달려있고, 카본이나 유리섬유를 넣어서 만든다. 휴대성은 고려하지 않고 목표 적중에만 고려해서 만든 활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통활인 국궁은 실용적이고 휴대성도 좋고, 간단한 구조이면서도 사냥이 가능할 정도로 힘이 좋다.
“우리나라의 활과 화살은 단순히 무기가 아니었다. 활쏘기는 임금이 갖춰야 할 덕목이었고, 선비들은 활쏘기를 통해 호연지기를 기르고 한데 어울려 실력을 겨루며 풍류를 즐겼다. 요즘으로 치면 활쏘기는 당시대의 스포츠였다. 특히 우리나라의 각궁(角弓)은 탄력이 좋아 멀리 나가고, 파괴력이 좋아 단연 세계 최고다. 각궁은 대나무와 구지뽕나무, 물소 뿔과 쇠심줄이 어우러진 복합궁으로, 서양의 활과 비교되지 않는다. 서양식 활은 나무에 활시위를 달아 반달 형태가 되도록 잡아당겨 쏘는 방식이지만, 각궁은 물소 뿔과 쇠심줄을 붙여 둥글게 말린 나무를 180° 뒤집고, 다시 활시위를 걸어 쏘는 식이기 때문에 더 강하게 멀리 나간다.”(영집 궁시박물관 홈페이지)
우리나라 활은 죽궁과 목궁으로 크게 나뉜다. 죽궁은 대나무를 기본으로 해서 만든 활이고, 목궁은 나무를 깎아만든다. 목궁은 하나 이상의 나무를 재료로 사용하여 만드는 합성궁과 복합궁으로 나뉘기도 한다. 또 하나는 활의 모양에 따라 각궁과 목궁으로 나뉜다. 각궁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합성궁으로, 참나무, 산뽕나무, 물소뿔, 소힘줄, 대나무를 민어부레풀(어교)로 접합하여 만들었다. 안쪽에 압축력이 좋은 무소뿔과 가장 질긴 소힘줄이 붙여서 힘도 좋고, 탄성도 좋아 활시위를 당겨 버티다 쏘아도 사수거리가 길다. 양반들이 즐겨썼다.
그러나 각궁은 만드는데 오래 걸리고(1년 넘음), 공정도 복잡하고, 우리나라에 없는 무소뿔을 수입해 와야해서 비용이 많이 든다. 더구나 각궁 접착제가 어교인데, 습기에 약하고, 겨울에는 굳어버리는 문제가 있었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때 비가 와서 활을 쓸 수 없었던 것도 회군 이유중 하나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이소운군이 알려준다.
목궁은 전쟁에서도 각궁보다 많이 사용했던 것으로, 활시위를 당기면서 바로 쏘아야 한다. 이소운군은 서민들이 즐겨 썼던 목궁을 좋아한다고 했다.
“중1때 장난감 활 만들었다가 빠졌어요”
16세 고1 학생이 어떻게 활을 만들 수 있었을까? 더구나 독학으로.
어릴 적부터 손으로 만드는 것을 즐겨했다. 자전거를 직접 즐겨 만드는, 손재주 많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이소운군은 어릴적부터 마술, 십자수, 영화에 나오는 소품 따라 만들기도 하고, 레고 놀이를 즐겨했다. 초등학교때까지 그렇게 놀다가, 중학교때부터 활에 빠져 활만 만들어왔단다.
“중 1때는 막대기에 줄을 이어 활이 날아가면 활이다 했죠. 장난감으로 만들었어요. 재밌어요. 그래서 활 만드는 인테넷 카페에 가입해서 만들다 보니 재밌는 거예요. 특별히 더 재미있더라구요. 그래서 빠졌어요.”
이소운군은 지금 금산간디학교 고1이다. 활 만들기를 한 것은 중1때부터이니 어느덧 4년차이다. “그 다음에는 옛날에 쓰던 활, 빠르고 강하고 실용적인 활을 만들고 싶었어요. 사냥이 가능한 활. 그래서 성능을 높이려고 연구를 많이 했어요. 어느 사수에게 확인했더니 제 활이 사냥이 가능하다고 하더라구요.” 사수거리가 180m이다.
소운군이 활동하고 있는 궁시공방 카페는 2006년 설립한 카페로 국내 아마추어 활 제작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 정보도 교환하고, 활쏘기 문화를 알리는 동호회이다. 7월 현재 34,378명이 회원이 있었다. 활제작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초반에 시도하다가 어려워서 그만 두는 사람이 많단다. 인터넷 카페외에, 같은 또래에 활 만드는 친구 2명과 정보를 공유하고, 활 만드는 장인분들을 자주 만나 배운다고 했다.
▲활 만드는 작업장에서
활 만들며 물리공부, 역사공부, 세계인과 교류
“각궁을 만드는 장인은 몇 십 명있는데요, 목공 장인은 두 분뿐이예요. 논산과 연천에. 목궁은 서민문화여서 일제강점기때 대가 끊겨던 것을 구전과 지역사료 연구로 복원한 거예요. 외국에는 활 문화가 굉장하거든요. 프랑스는 옛날 문화가 이어져 왔잖아요. 우리나라처럼 식민지 단절 시기가 없어서. 문화가 보존된 나라에 가면 활을 많이 쏘고, 만드는 사람도 많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적은 편이예요.”
“자작나무 껍질은 바깥쪽에 습기에 강하라고 붙이고요.. 벚나무는 자작나무보다 약하긴하지만 쓸만 해요. 압축력이 좋은 나무는 안쪽에, 인장력이 좋은 나무는 바깥쪽에 붙이면 활의 탄성이 좋아져요. 이 활은 5가지 나무를 붙여 만든 활이예요.”
올 해 학교에서 발표한 활만들기 영상자료를 보면 인장력과 압축력, 활의 크기와 각도에 따른 장력의 차이 등 과학적으로 분석한 ‘활의 물리’가 중심내용이었다. 활을 만들면서 물리도 공부하고, 역사도 공부하게 되는 것이다.
작년에 열린 9회 세계민족궁대회에 가서 세계 여러 나라 사람을 만나서 교류하는 기쁨도 남다랐다. 페이스북에서 친구 맺은 외국인들과 대화하면서 영어실력도 는다고 했다. 자기를 인정해주고, 같은 관심사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이 큰 기쁨을 주니 절로 영어를 공부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진짜 공부 아닐까?
▲직접 구한 나무를 다듬고 있다
산을 헤매고 다니고, 1~2년 나무가 숙성해야
활 만들 좋은 재료를 찾아다니느라 산을 몇 시간씩 헤매고 다녀 엄마가 걱정을 많이 한다고 했다. 나무 공부도 많이 했다. 나무를 선별하는 것은 까다롭다. 키 정도 크기로 나무를 잘라 햇볕 안드는 그늘에서 1~2년 정도 삭히고, 삶고, 건조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소운군은 바닥에 놓인 나무를 하나씩 짚으며 나무 이름을 말했다. “참나무, 아카시, 느룹, 소태, 노린재, 구지뽕, 물푸레. 회목, 대물푸레, 감태, 산초나무.” 이 나무들의 특성을 잘 살려, 자르고, 다듬고, 붙이는 작업을 1달 남짓해야 한다.
“활은 모양이 단순하지만 매커니즘이 복잡해요. 활의 끝부분보다 안쪽부분이 더 휘어야 효율적이예요. 끝 부분이 휘어지면 시유각이 커져서, 필요없는 힘이 쓰이게 되요. 그리고 위 아래 활체 길이가 달라요.” 책이 아니라 손으로 배워 몸에 익은 지식이 술술 나왔다. 아리따운 소년의 모습에서 장인다운 면모가 풍긴다.
▲활 만드는 작업에는 많은 도구가 필요하다.
전통활 만들기 워크샵하고, 목궁 제작 잇고 싶어
이소운군은 독학입문이 쉬운 양궁에 비해, 매뉴얼도 부족하고, 독학이 어려워 젊은이들이 국궁 취미를 갖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와했다. 자신이 이 일을 열심히 하면 국궁도 전통놀이로 보급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활을 만들어서 판매하기 보다, 활만들기 워크샵 같은 것으로 국궁문화를 보급하고 싶어한다.
“복원, 보급에 신경쓰고 싶어요. 전통활 만들기 워크샵을 하면 재밌을 것 같아요. 목궁 장인이 2분 계시잖아요. 활 문화는 우리 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어요. 전쟁에서도 활을 중심적으로 이용했고, 사냥할 때도 그렇고. 그런데 지금 많이 없어지고, 남아있는 것마저 없어지려 하니까, 계속하고 싶어요. 목궁은 이어갈 사람이 없으니 제가 이것을 하면 좋겠어요.”
대학은 한국전통문화대학으로 진학할 예정이다. 국궁에 대해서 배울 것은 없지만, 전통공예와 역사, 기술 등을 배워 활제작과 접목하고 싶은 뜻이 있다.
자기 길을 찾은 16세 이소운군. 행복한 이소운이란 표현이 100% 적절하다. 그래서 물었다. 아직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청소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는가? 자신은 부모님이 지지해주어 길을 찾은 행운아라며 말을 이었다.
“제 생각에는 부모님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못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도와주면 좋겠어요. 지금 대부분의 부모님은 다른 아이들처럼 안정적으로 살게 하려고 경쟁에 뛰어들게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이런 거 한다면 좋아하겠어요? 하고 싶은 거 하다보면. 노는 것처럼. 그러다 보면 잘하게 되고. 그래서 찾게 되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것을 도와주도록... 그것이 어른들의 몫인 것을….
글 · 사진 임현주 기자
자료사진 이소운 제공
#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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